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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역설

인용

늦은 시간에 질문 올려 죄송합니다. 시 '담쟁이'에서 푸르게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에서 역설 표현이 사용된 것이 맞는지요?
'절망을 이겨내는 마지막 순간까지 절망의 상황에 좌절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이해했는데 이 표현이 역설이라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요...

인용

보통 역설로 설명하지 않나요? 저도 딱 와닿지는 않는데,,애들이 물어봐서 설명해 줄 때는.. 이렇게 합니다.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나아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벽=절망
담쟁이=벽을 덮으며(수천 개를 이끌고)
절망을 다 덮을 때=벽을 넘을 때

"잘 봐, 담쟁이는 토끼나 말처럼 점프를 해서 벽을 넘을 수 없어. 어떻게 넘어야 해? 벽을 붙잡고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가겠지? 벽 꼭대기에서 되돌아보면, 중간에 빈 곳이 있을 수 있어 없어? 벽 전체를 다 덮어야만 담쟁이는 그 벽 너머로 갈 수 있는 거야. 하지만 벽은 뭐라고? 절망이지. 절망을 마주하는게 쉬워? 벽에 한 잎 한 잎 붙일 때마다 매 순간 절망을 느끼겠지? 하지만 어때? 그 절망(=벽)을 붙잡지 않고서는 벽을 넘을 수가 없는 걸 알겠지? 벽을 푸르게 다 덮을 때는 담쟁이가 담을 넘는 때인데, 그 담을 넘어 '절망을 극복할 때'까지 담쟁이는 그 '절망을 붙잡고 놓지 않는' 거야. 절망이 싫다고 그걸 놓아 버리면 벽을 넘을 수 없으니까. 원하는 걸(벽 너머) 얻기 위해 원치 않는 걸(절망의 벽 붙들기) 해야 하는 상황. 즉, 이건 상황의 역설이라고 봐야지."

인용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가 역설적 표현 아닐까요?
절망은 놓아야하는 건데
놓지 않는다고 표현하고 있으니까요.

인용

저는 관념의 구체화로만 보이는데요ㆍㆍ우리가 벽을 절망으로 보고 있을 뿐 담쟁이는 절망한 적이 없어요 우리가 절망이라고 부르는 것을 잡고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넘어갈 뿐 아닌가요?

인용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는 절망 너 두고 봐 너를 이겨내고 말거야. 너 따위 앞에 쉽게 무너지지 않겠어. 라는 의미로 보이지 이것을 역설로 보기에는 좀 그렇네요... 절망을 놓는다는 건 굴복한다.는 의미로 보이거든요.

인용

문제에 나온 것일까요? 아님 해설서에? 저도 이유가 궁금하네요ㅎ

인용

동료 샘께서 역설을 얘기 하셔서요. 위 선생님들, 늦은 시간까지 답 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안히 주무세요. 꿈 속에서 고민해 보겠습니다.^_^

인용

그래서 역설로 설명한 걸 애들이 들고 올 때만 그렇게 설명해 주긴 하는데..

역설이라고 하는 쪽의 의견도 일리가 있는게,

"절망을 잡고"
"절망을 놓고"
이 부분의 의미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달린 거 같아요. 담쟁이가 덩쿨손으로 절망을 '잡는다'는 건 무슨 뜻일까요? 무엇을 '형상화'한 것일까요?

절망을 잡으면 절망이 나에게 붙어 있겠죠. 나와 함께 있겠죠. 절망이 나와 함께 있다? 절망이 내 안에 있다?
- 그건 바로 "내가 절망한다"라는 뜻입니다.
절망하고, 절망감에 사로잡힌 사람에게 우리는 뭐라고 말하나요?
- "절망하지 마. 절망감을 갖지마 = 절망감을 버려. 대신 '희망'을 가져."

하지만 담쟁이는 절망을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는 절망을 극복하죠. 이건 뭐냐?
- 절망적인 상황에서 절망감을 희망감으로 바꿔 마음을 고쳐먹음으로써 절망을 극복하는 것이 아니라,
- 절망하고 또 절망함으로써 절망감을 극복하는 이야기이죠.

절망은 희망이 없다는 뜻인데, 절망을 함으로써 희망의 세계로-담 너머로- 나아갔으니 일종의 역설이라는 겁니다.
대충 설명은 돼요. 꼭 그렇게 봐야 하는 건 아니지만요.

반대로 말하면 "그건 역설이 아니야"라고 딱 자르기도 어렵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