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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pic summary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9 AM
Quote from: 익명 on Dec 14, 2022, 09:29 AM고등학생들이나 임용수험생들이 '역설적'에 대해 물을 때가 있습니다. 흔히 '역설' 말고 '역설적'이라고 할 때는, 작품의 표면 의미과 심층 의미가 다를 때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흥부전을 읽으면 마지막에 박에서 보물이 튀어 나와 부자가 됩니다. 표면 의미는 흥부가 부자가 된 거겠죠. 하지만 심층 의미는, "이러한 판타지에 기대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도저히, 절대로, 어떤 방법으로도 가난과 궁핍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당시 농민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이럴 표면과 심층의 모순이 있지만, 그걸 '부자가 되었지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부자가 되었지만 부자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역설법'이 나타난 문장으로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우, 작품 해설들에서 보통 '역설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농무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농무라는 시는, 실제로는 '농무'의 막이 내린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농무의 뒷풀이에서 현실에 대한 탄식을 하다가 술에 취해 길거리로 뛰쳐나갑니다. 청년은 없고 쪼무래기들만 남은 동네에서 처녀들은 킥킥 대고 누구는 악을 쓰고 누구는 실실거리고 농사는 돈도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취한 눈에 죽~ 보입니다. 그런 거리를 한참 꽹과리를 치며 돌다 보면, 불현듯 신명이 납니다. 이를 반어로 해석하는 분들은 '신명이 난다.' 부분을 "와 XX 기분 졸~라 째지네! 응, 아주 그냥 좋아죽~겠네." 이런 식으로 해석된다는 뜻일 겁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이때 신명은 '반어'로 읽히지 않습니다. '가설무대'에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농무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지치고 울분에 찬 농민들이 뒷풀이에서 자신을 달래기 위한 '진짜 농무'를 함으로써, '그래도 힘을 내서 또 살아야지.'하는 신명으로 느껴집니다. 일종의 승화죠.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노동요를 부르는 것처럼요. 나쁘게 말하면 현실 비판에 대한 마취효과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어찌됐든,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라는 본심에 대해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라는 반어적인 말을 한 게 아니라고 해석된다는 뜻입니다. 시 내부에서도 '원통하다'와 '신명이 난다' 사이에 시간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심리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때 신명이 진짜 신명이긴 한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첫째, 이런 신명이라도 내지 않으면 '비료값도 안 되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 다음날을 맞이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면에서, 비극적 현실을 강화하는 장치입니다. 이런 경우, 반어도 역설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승화된 신명이든 마취된 신명이든, 어쨌든 울분이 쌓여서 에라 모르겠다, 할 때 비로소 신명이 올라옵니다. '가설무대'에서 보여준 농무는 가짜 농무이고, 막이 내린 뒤, 뒤풀이도 끝날 즈음에 '진짜 농무'가 시작된다는 점(꽹과리를 불고 다리를 흔드는 표면적인 농무 + 공동체를 유지하고 고된 노동을 위로한다는 본질적인 농무)에서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셋째, 오히려 이놈의 신명이라도 없으면 당장 때려치우고 도시로 돈 벌러 떠났을 텐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아있는 이 신명 때문에 '비료값도 안 되는 농사'를 때려치우지 못하고 다시 농촌에 눌러 앉게 된다는 면에서, 구조적 아이러니로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구조적 아이러니는 인물의 의도과 결과가 불일치하는 걸 말하는데 흔히 역설과 구별이 잘 안 됩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아내에게 잘해주려는 '의도'로 비가 옴에도 돈 벌러 나갔는데, 그 의도의 결과 아내에게 잘해주기는커녕 아내 혼자 쓸쓸하고 외롭게 죽게 만드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죠. 김첨지의 행동은 'ㅇㅇ적이게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말았다.'에서 ㅇㅇ에 들어갈 말로 '반어'와 '역설' 중에 어느 것이 어울리는지요? '운수좋은 날'이라는 제목을 반어로 가르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서사적 장치를 아이들과 다룰 수 없다는 게 문학 교육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직 여물지 못해 이리 휘청 저리 휘청하는 중입니다. 신명이 난다,,,이 부분을 반어라고 확실히 말씀하신 저희 동교과 선배님의 의견을 듣고 하루 종일 저는 고민이 되더라고요,,, 울분이 터지는데 신명난다 했으니 반대구나,,,,,
그러나 저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승화같은거로도 느껴지거든요,,그렇다면 반어로 보기 힘들고 ㅜㅠ 오히려 역설에 더 다가간 느낌이 들고요,,
농무 정말 잘 지은 시네요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9 AM
고등학생들이나 임용수험생들이 '역설적'에 대해 물을 때가 있습니다. 흔히 '역설' 말고 '역설적'이라고 할 때는, 작품의 표면 의미과 심층 의미가 다를 때를 가리킵니다. 예를 들어, 흥부전을 읽으면 마지막에 박에서 보물이 튀어 나와 부자가 됩니다. 표면 의미는 흥부가 부자가 된 거겠죠. 하지만 심층 의미는, "이러한 판타지에 기대지 않으면 현실에서는 도저히, 절대로, 어떤 방법으로도 가난과 궁핍을 벗어날 수 없다."라는 당시 농민의 현실을 드러낸다고 하겠습니다. 이럴 표면과 심층의 모순이 있지만, 그걸 '부자가 되었지만 부자가 될 수 없었다.', '부자가 되었지만 부자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역설법'이 나타난 문장으로 분명하게 표현하지 않는 경우, 작품 해설들에서 보통 '역설적'이라고 부르는 것 같습니다.

농무를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농무라는 시는, 실제로는 '농무'의 막이 내린 지점에서 시작합니다. 농무의 뒷풀이에서 현실에 대한 탄식을 하다가 술에 취해 길거리로 뛰쳐나갑니다. 청년은 없고 쪼무래기들만 남은 동네에서 처녀들은 킥킥 대고 누구는 악을 쓰고 누구는 실실거리고 농사는 돈도 안 되고.. 이런 것들이 취한 눈에 죽~ 보입니다. 그런 거리를 한참 꽹과리를 치며 돌다 보면, 불현듯 신명이 납니다. 이를 반어로 해석하는 분들은 '신명이 난다.' 부분을 "와 XX 기분 졸~라 째지네! 응, 아주 그냥 좋아죽~겠네." 이런 식으로 해석된다는 뜻일 겁니다. 나쁘지는 않습니다만,
저는 이때 신명은 '반어'로 읽히지 않습니다. '가설무대'에서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 '농무 공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로 지치고 울분에 찬 농민들이 뒷풀이에서 자신을 달래기 위한 '진짜 농무'를 함으로써, '그래도 힘을 내서 또 살아야지.'하는 신명으로 느껴집니다. 일종의 승화죠. 고된 노동을 잊기 위해 노동요를 부르는 것처럼요. 나쁘게 말하면 현실 비판에 대한 마취효과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요. 어찌됐든, "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라는 본심에 대해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라는 반어적인 말을 한 게 아니라고 해석된다는 뜻입니다. 시 내부에서도 '원통하다'와 '신명이 난다' 사이에 시간적으로 많은 차이가 있고, 심리적으로도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직접 연결하기 어렵습니다.
저는 이때 신명이 진짜 신명이긴 한데, 여러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보입니다. 첫째, 이런 신명이라도 내지 않으면 '비료값도 안 되는 농사'를 지어야 하는 다음날을 맞이할 용기가 생기지 않는다는 면에서, 비극적 현실을 강화하는 장치입니다. 이런 경우, 반어도 역설도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승화된 신명이든 마취된 신명이든, 어쨌든 울분이 쌓여서 에라 모르겠다, 할 때 비로소 신명이 올라옵니다. '가설무대'에서 보여준 농무는 가짜 농무이고, 막이 내린 뒤, 뒤풀이도 끝날 즈음에 '진짜 농무'가 시작된다는 점(꽹과리를 불고 다리를 흔드는 표면적인 농무 + 공동체를 유지하고 고된 노동을 위로한다는 본질적인 농무)에서 역설적으로 보입니다. 셋째, 오히려 이놈의 신명이라도 없으면 당장 때려치우고 도시로 돈 벌러 떠났을 텐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남아있는 이 신명 때문에 '비료값도 안 되는 농사'를 때려치우지 못하고 다시 농촌에 눌러 앉게 된다는 면에서, 구조적 아이러니로 보는 게 맞을 거 같습니다.
구조적 아이러니는 인물의 의도과 결과가 불일치하는 걸 말하는데 흔히 역설과 구별이 잘 안 됩니다. 운수 좋은 날의 김첨지는 아내에게 잘해주려는 '의도'로 비가 옴에도 돈 벌러 나갔는데, 그 의도의 결과 아내에게 잘해주기는커녕 아내 혼자 쓸쓸하고 외롭게 죽게 만드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죠. 김첨지의 행동은 'ㅇㅇ적이게도 의도와 다른 결과를 낳고 말았다.'에서 ㅇㅇ에 들어갈 말로 '반어'와 '역설' 중에 어느 것이 어울리는지요? '운수좋은 날'이라는 제목을 반어로 가르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작품 전체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서사적 장치를 아이들과 다룰 수 없다는 게 문학 교육의 한계라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8 AM
결국 20세기 문학비평에서 패러독스와 아이러니가 개념상 서로 혼란을 일으키게 된 이유는
첫째 신비평가들, 클리언스나 브룩스가 명확한 개념 규정 없이 이들 용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며, 역설의 정확한 개념 규정 내지 아이러니와의 차이점에 대해 전혀 언급을 않은 채 같은 뜻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둘째, 클리언스와 브룩스를 포함한 신비평가들의 시에 대한 기본 태도가 리처즈의 아이러니의 개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리처즈의 아이러니는 '모순의 조화(심리학적 측면에서)'를 본질적으로 함에 비해서 브룩스의 패러독스는 '모순의 초월(존재론적 측면에서)'을 본질로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원래 문학공부라는 게,
처음에 '개념이나 용어를 이해'할 때는 'ㅇㅇ는 무엇이다.'로 딱 떨어지게 공부할 수 있지만,
그걸 '작품에 적용'하여 의미를 해석할 때는 이래도 되고 저래도 되는 태도를 가지는 게 낫습니다.
다만 교육적인 목적에서 단순히 설명을 원하신다면 아래 링크가 가장 깔끔하겠습니다.
https://m.kin.naver.com/mobile/qna/detail.nhn?d1id=3&page=1&docId=255846795&dirId=307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7 AM
의견 감사합니다 ^^ 울분이 터지는 상황에서 신명이 난다고 했으니, 반어는 맞는거겠지요???
상황은 역설이고요??;;;;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7 AM
으으.. 저는 저기  '역설적'이라고 설명하는 부분을 참 싫어 해요..ㅠㅠ 역설법이면 역설법이지 역설적..이라니..  ~적을 붙이면 (꼭 그것이 아니더라도 )그런 성격이 있는... 뭐 이런 식이잖아요... 인간적이다 도덕적이다. 인위적이다 상대적이다 ...  <농무>도 상황적 아이러니( 다 죽을만큼 힘든 상황인데도 신명이 나는 상황)라는 말로 설명하고 있지요. 그냥 역설이라고 하면 '도수장 앞을 와 돌때'랑 신명나는 것이랑은 하등의 모순관계가 없거든요.. 그러니 역설적... 이라는 애매하지만.. 이해가되는 말을 쓰는 것 같은데, 그냥 상황적 아이러니가 차라리 더 좋은 표현같아요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7 AM
저도 역설적으로 드러나다
역설적 표현을 사용하다
이것의 차이점이 존재하는 것 같아서 사전을 찾아봤는데요, '역설'의 사전적 뜻이 제가 그냥 알고 있던 뜻과 좀 다르더라고요.

어떤 주의나 주장에 반대되는 이론이나 말.

이라고 되어 있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겉보기에 모순이 되는 것을 말할 때의 사용하는 말인 '역설'은 사전에는 '역설적(관형사)'으로 등록되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역설적 표현이 드러난다'고 하면, 표면상 모순이 되는 것을 말하는 것이 되고, 우리가 흔히 수업 때 말하는 그 '역설'인 것 같아요.

그런데, '~~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라는 말은, 하나의 내용이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를 드러낼 때 쓰잖아요. 여기서의 '역설적'은 사전적 의미를 고려한다면 '역설(명사)+적(접미사)'로서, '역설적'이라는 단어와는 다른 단어인 것 같아요. 그런데 같은 것이라 생각해서 헷갈리는 거고요.
1670977587410.png

 사전만 찾아보고 이렇게 결론을  내려도 되는 건가 싶기는 하지만, 저는 일단... 이렇게 생각하니 좀 명쾌해지는 느낌이긴 했습니다^^;;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3 AM
시적 역설이 생각 나서 답변드립니다. 반어적인 표현의 사용으로 인해 시의 구조상에서 나타난 시적 역설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해요
시적역설.jpg
Posted by 익명
 - Dec 14, 2022, 09:22 AM
중2, 반어, 역설이 드러난 시들을 가르치고 있는데요... 신경림의 <농무> 에서 '쇠전을 거쳐 도수장 앞에 와 돌 때/ 우리는 점점 신명이 난다.' 이 부분에서 신명의 반대 울분을 표출하므로, 반어법이 사용되었다. 또한 절망적 농촌현실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거다. 요렇게 두 가지를 전부 설명해도 될까요?.... 반어법은 맞고, 역설법은 아니지만 역설적으로 표현한거다..;;;;;  혼자 머리를 쥐어뜯다가 여쭤봅니다..ㅠㅠㅠ;;;;
Posted by 익명
 - Dec 13, 2022, 05:02 AM
Quote from: 익명 on Dec 13, 2022, 05:02 AM화가 나거나 절망적 상황인데 신명이 난다고 했으니 반어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어디가 역설인거죠?
저는 상황 자체가 농민의 고통스러운 삶을 표현하고 있기 때문에 역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Posted by 익명
 - Dec 13, 2022, 05:02 AM
화가 나거나 절망적 상황인데 신명이 난다고 했으니 반어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근데 어디가 역설인거죠?
Posted by 익명
 - Dec 13, 2022, 05:02 AM
신경림 농무에서 "점점 신명이 난다"가 반어로 볼 수 있나요? 역설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을 것 같은데 반어가 가능한지 싶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