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ote from: 익명 on Dec 13, 2022, 05:26 AM이도령이 변장을 하고 춘향이를 구하러 옵니다.오 이렇게보니 전지적시점과 초점화가 확 구분이 되는 느낌이네요!
밤에 월매한테 갔더니 월매가 보기에 이몽룡이가 영락없는 거지입니다. 월매가 이도령만 기다렸는데 그꼴을 보고 하늘이 무너집니다. '이제 내딸 춘향이는 죽었구나!'하고 웁니다.
전지적화자가 자신의 시점을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잠시 인물의 시점을 빌려 초점화자가 됨으로써 월매의 절망감을 극적으로 드러내고, 독자는 그 상황을 모두 알고있으므로 재밌고 쾌감을 느끼게 되죠.
삼대도 마찬가지입니다. 돈뿐만 아니라 세대의 차이를 3인칭 서술자가 덕기는 이렇습니다. 상훈은 이렇습니다. 하지 않고 그때그때 덕기의 눈을 빌려 상훈의 눈을 빌려 병화의 눈을 빌려 상황과 심리를 진술하거나 묘사함으로써,
일단은 내용이 좀더 실감나고, 독자는 여러명의 이야기를 입체적으로 듣게 되므로 재미가 있죠. 작품의 주제 또한 '서술자의 의도,작가의 의도에 맞춰서 하나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관점에서 작품의 주제가 다르게 이해될 수 있어서 독자는 단순한 줄거리와 주제 파악을 넘어서 풍성한 감각을 느끼게 됩니다.
이도령은 사실 거지로 변장한 암행어사.라는 걸 서술자가 이미 아는데 긴장감이 없지요. 하지만 월매는 모르니 이럴 때 '월매가 보니 영락없는 거지더라.'하는 거나 삼대에서 수시로 초점이 옮겨가는 거나
모든 소설적 장치는 실험소설이 아니라면 대부분
'재미'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라고 보시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