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 후음 ㅇ

Started by 손님, Dec 14, 2022, 08:27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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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선생님, 질문이 많이 있습니다. ^^;;;

1.세종대왕님께서 창제하신 ㅇ은 후음이었잖아요. 현재 후음은 ㅎ만 있는데  창제 당시 후음 ㅇ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2.중세의 아음이 현대의 연구개음이잖아요. 이건 명칭이 달라진 이유가 있는 건가요?
 연구개음이라는 명칭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3. 이어서 중세는 설음, 치음 따로인데 현대는 치조음으로 같잖아요. 이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당시 소리와 현재 소리가 달라서 그런 건가요?

익명

1. 후음 ㅇ, 후음 여린히읗, 후음 쌍히읗 중 후음 ㅇ은 음가 없는 표기여서 지금도 그대로이고 여린히읗은 중국한자음 때문에 만들어서 원래 안 썼고 쌍히읗은 사라졌습니다.

2. 아음은 어금니위치라는 뜻으로 거기가 거기지만
연구개는 조음기관을 능동부 고정부로 나누고 혀가 닿는 위치를 중심으로 치조-경구개-연구개 로 일관성있게 맞춘 겁니다. 어금니에 혀가 닿지는 않으니까요

3. 당시와 현재의 발음하는 방법이 달랐다고 볼 수 있지요.

익명

자세한 답변 감사드려요~

추가로, 조음 위치에 따른 분류 명칭은 그럼 후대에 생긴 거지요? 언제부터 치조음, 경구개음, 연구개음 이런 명칭을 쓴 걸까요?

익명

저도 궁금해서 찾아보았는데 이런 내용이 있네요 추가로 참고하시면 좋을 듯 해서 올려봅니다
1670974091842.jpg

익명

외국에서 음운 분류를 위치와 방법으로 설명하는 이론을 도입하여
일제시대 소창진평 이나 김두봉 같은 분도 이미 경구개 연구개 라는 분류법을 씁니다. 이름은 순우리말로 했지만요

Quote조음 위치에 따른 분류 명칭은 그럼 후대에 생긴 거지요? 언제부터 치조음, 경구개음, 연구개음 이런 명칭을 쓴 걸까요?
- 이 질문도 잘 구분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1.조음 위치에 따른 분류 명칭은 그럼 후대에 생긴 거지요? - '조음위치에 따른 분류'명칭은 세종시대에 이미 있었습니다. 제 말은, '조음위치를 분류'하는 방법이 후대에 달라졌다는 뜻일 뿐입니다.

2. 언제부터 치조음, 경구개음, 연구개음 이런 명칭을 쓴 걸까요? - 언제부터 치조 경구개 연구개 라는 조음위치 분류를 도입했냐는 질문인지, 언제부터 그걸 '센입천장 여린입천장'이 아니라 '경구개 연구개'라고 불렀느냐는 질문인지에 따라 답도 달라지지요

1670974162338.jpg

 20세기의 시작과 함께 국어학계에는 이런 분류법이 보편화된 걸로 보입니다.
그림은 김두봉의 용어입니다. 역시 능동부와 고정부를 이용한 위치분류법을 쓰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입천장. 대신 '입웅'을 쓰는데, '집웅=지붕'처럼 '입웅'이란말을 개발한게 재밌죠


익명

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제가 학부에서 배울 때, '몰애' 같은 표기는 연철하지 않고 ㅇ을 밝혀 적었고, 그것이 음가 있는(후음) ㅇ의 존재를 뒷받침했다./ 그러다가 후음 ㅇ은 곧 사라졌다.
이렇게 배웠는데요.
음가가 없다는 표시 ㅇ과 실제 자음(후음) ㅇ이 적어도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구분되었다고 보지 않나요?

익명

Quote from: 익명 on Dec 14, 2022, 08:30 AM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제가 학부에서 배울 때, '몰애' 같은 표기는 연철하지 않고 ㅇ을 밝혀 적었고, 그것이 음가 있는(후음) ㅇ의 존재를 뒷받침했다./ 그러다가 후음 ㅇ은 곧 사라졌다.
이렇게 배웠는데요.
음가가 없다는 표시 ㅇ과 실제 자음(후음) ㅇ이 적어도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구분되었다고 보지 않나요?


그냥 학설이죠^^
실은 아무도 몰라요.
세종이
음가없는 표시 ㅇ
음가있는 후음 ㅇ
이렇게 헷갈리게 창제하셨을지도 의문이고요.

짐을 지다 - 짐을 지었다 - 짐을 졌다
경기에 지다 - 경기에 지었다 - 경기에 졌다

밥을 짓다 - 밥을 지었다 - 밥을 졌다?
집을 짓다 - 집을 지었다 - 집을 졌다?

지었다 > 졌다 를 보면 'ㅣ'와 'ㅓ'가 만나서 하나가 반모음 j가 되는 데에 모음과 모음이 만난다는 '음운적조건'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기저형이 '지'인 것과 '짓'인 것의 차이가 느껴지지요? 기저형이 '짓'인 것은 '졌다'로 되지 않습니다. 이건 '형태적인 조건'인데,
만약 이걸 '음운적 조건'으로 설명한다면,
1. 지다 > 지었다
2. 짓다 > 지었다
에서 1의 ㅇ은 음가 없는 표기이고 2의 ㅇ은 그럼 ㅣ와 ㅓ 모음들이 직접 만나는 걸 막아주는, '음가있는 ㅇ' 즉, 훈민정음 시대의 몰애, 달아의 후음 ㅇ이라고 말할 순 있겠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

익명

Quote from: 익명 on Dec 14, 2022, 08:30 AM
Quote from: 익명 on Dec 14, 2022, 08:30 AM선생님, 질문 있습니다~
제가 학부에서 배울 때, '몰애' 같은 표기는 연철하지 않고 ㅇ을 밝혀 적었고, 그것이 음가 있는(후음) ㅇ의 존재를 뒷받침했다./ 그러다가 후음 ㅇ은 곧 사라졌다.
이렇게 배웠는데요.
음가가 없다는 표시 ㅇ과 실제 자음(후음) ㅇ이 적어도 훈민정음 창제 당시에는 구분되었다고 보지 않나요?


그냥 학설이죠^^
실은 아무도 몰라요.
세종이
음가없는 표시 ㅇ
음가있는 후음 ㅇ
이렇게 헷갈리게 창제하셨을지도 의문이고요.

짐을 지다 - 짐을 지었다 - 짐을 졌다
경기에 지다 - 경기에 지었다 - 경기에 졌다

밥을 짓다 - 밥을 지었다 - 밥을 졌다?
집을 짓다 - 집을 지었다 - 집을 졌다?

지었다 > 졌다 를 보면 'ㅣ'와 'ㅓ'가 만나서 하나가 반모음 j가 되는 데에 모음과 모음이 만난다는 '음운적조건'만 있으면 될 것 같지만,
기저형이 '지'인 것과 '짓'인 것의 차이가 느껴지지요? 기저형이 '짓'인 것은 '졌다'로 되지 않습니다. 이건 '형태적인 조건'인데,
만약 이걸 '음운적 조건'으로 설명한다면,
1. 지다 > 지었다
2. 짓다 > 지었다
에서 1의 ㅇ은 음가 없는 표기이고 2의 ㅇ은 그럼 ㅣ와 ㅓ 모음들이 직접 만나는 걸 막아주는, '음가있는 ㅇ' 즉, 훈민정음 시대의 몰애, 달아의 후음 ㅇ이라고 말할 순 있겠죠. 하지만 정말 그럴까요? ^^

이렇게 설명해 주신다면, 저는 아래와 같은 생각이 듭니다.
현대국어의 불규칙 활용에 있어,
-'수고롭다-수고로ᄫᅵ>수고로이'
-'짓다-지ᅀᅥ>지어'
가 된 것처럼, '몰애'같은 경우도 '?몰개>몰애>모래'가 된 것으로 추측한다면 초성에서 소리 난 후음 'ㅇ'의 존재(음가가 약화되는 상황?)를 재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입니다~~
(항상 생각할 거리를 주시니 재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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